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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시크릿 레시피 - 브라운백의 화재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시크릿 레시피 - 브라운백의 화재
Photo by Antonio Poveda Montes / Unsplash

2019년에 브라운백 커피는 불이 났었다.
로스팅 센터가 다 타고 원/부재료가 몽땅 소실되는 화재였다.
이 화재로 상당한 손실을 입었지만 브라운백의 멤버들은 아무도 그 화재를 탓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심 탈레브는 불확실한 현실을 오히려 기회로 만드는 특성을 '안티프래즐 Antifragile'이라고 했다. 깨지기 쉽다는 뜻의 fragile과 반대로 '깨질 수록 강해진다'는 의미인 이 말은 다시 생각해보면 '위기를 기회로'라는, 한국인에겐 이미 익숙한 개념이기도 하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창업한 나는 세상일이 전부 내 뜻대로 될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생각대로 되는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여러차례 사업을 하면서 산업과 시장에 대한 가설, 고객의 반응, 진입 타이밍, 동료의 생각 등 내 예측과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기상청이 야유회 가는날 비가 내린다거나 우연히 넘어졌는데 옆에서 떨어진 돈을 주웠다는 등의 우스개처럼, 차라리 생각지 않았던 좋은 일이 있었던 적은 있었지만 예측대로의 무엇인가 그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불까지 나니 참담하기만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우선 급히 동료들의 건강과 복구를 챙겼다. 사람이 다치지 않아 천만 다행이었다. 그 후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리더들과 머리를 맞댔다. '우리는 이번 일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번 일이 나중에 더 좋은 결과로 거듭난다면 우리는 뭘 해야 하는가.'

브라운백 커피의 원두 생산은 매우 복잡했다. 업계 평균의 10배가 넘는 종류의 커피 라인을 고객 취향에 맞게 다각화해서 제조하고 있었고, 고객의 판매 데이터와 피드백 데이터를 분석해서 제조에 반영하는 R&D를 함께 했으며, 모든 회차의 제품에 매우 엄격한 QC를 적용했다. 한 건물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이런 통합 구조가 의사 결정의 간극을 줄여주고 빠르게 반응하는데는 좋았지만, 위기를 맞아보니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업을 바라보는 시야를 달리 했다.

나이키와 애플처럼, 직접 제조를 고수할것이 아니라 고객 가치를 만들고 그것이 제공된다면 파트너와 함께 공급망 Supply Chain을 형성하는 게 좋겠다. 우리는 고객을 연구하는 본연에 충실하고, 그 가치를 채울수 있다면 무게를 줄일수 있겠다. 아니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할 것인가라고 강하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때 걱정해준 파트너들과 함께 6개월 이상 공들여서 첫번째 라인을 만들어보고, 두번째 세번째도 이어 성공시키며 공급망을 조금씩 구축했다. 제조 인력의 관리도 분리해서 운영하니 한결 가벼워졌다. 커피 역량도, 데이터 역량도 갈 수록 더 축적되었다.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원두에서, 드립백에서, 커피 머신에서 생태계와 스탠다드를 함께 이루어가는 구조를 갖게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애초에 커피 자체보다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행복에 관심이 많아 이 사업을 시작했던 나에게 더욱 맞는 길이기도 했다.

구독 사업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이런 결정은 더 큰 기회로 연결되었다. 기술과 연구에 집중할 수 있어서 한국인이 즐겨마시는 커피를 분석하고 재정의할수 있었고, 좀 더 객관적으로 커피와 구독 산업 전체를 볼 수 있었다. 파트너십이 확장되면서 우리는 더 고객과 본질에 몰입하게 되었고, 브라운백은 비로소 커브를 타게 되었다.

지금은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파트너십과의 협력 문화는 당연한 것처럼 우리에게 내재되어있고, 구독 사업의 확장성은 모두 이런 협력의 힘을 크게 받고 있다.

우리가 그 때 재정비에만 급급했다면, 아마 지금의 브라운백은 없었을 것이다.
업의 본질, 우리의 본질을 바라보며 복구가 아니라 기회로 바꾸려고 애쓴 것이 돌이켜보니 큰 의미가 있었다. 안티프래질은 가능했다.

사건을 맞이하며 걱정과 우려에 깊이 빠지면, 당사자는 보통 헤어나오기에 급급하므로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일을 걱정하는 것은 사실 대부분 의미가 없다.

어니 J. 젤린스키는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것이다."

브라운백은 화재(이미 일어난 30%), 화재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바꿀 수 없는 40%), 경찰과 소방관에 대한 대응(사건들 22%), 도망(바꿀 수 없는 4%)가 아니라 그 사건을 기회로 만드는 4%에 집중했고, 멤버들의 헌신은 그 4%를 빛나는 미래로 만들어주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 재정비가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4%였다.

세상을 우습게 보며 더워서 짜증, 배고파서 짜증, 성과가 생각대로 나지 않아 짜증이던 나는 되는 일이 없었다. 철없던 시절, 96%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각을 바꾸자 오랜 기간 방황하며 힘들기만 하던 삶이 이젠 즐겁고 도전할만한 것이 되었다. 변화가득한 세상에서 매일같이 사건과 마주하는 분들께, 4%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다음 시크릿 레시피를 추천드린다.

'이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지금 이 일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 일이 기회가 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