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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하루아침에 물들지 않는다 : 변화의 순차성

단풍은 하루아침에 물들지 않는다 : 변화의 순차성
Photo by Dennis Buchner / Unsplash

가을이 되면 단풍이 진다.
어릴때는 보이지도 않던 이 아름다운 자연의 변화는 스스로는 그렇게 때가 되면 변화하고 있는지, 자연스러운지, 눈앞의 일에 사로잡혀 큰 흐름을 못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보게 돕는다.

변화를 추구하는 인류의 노력은 에덴 동산을 떠나게 만든 아담과 이브(하와)처럼, 공중정원을 자멸하게 만든 바빌로니아 제국처럼,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루스처럼 어쩌면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도 더 나은 모습을 원하는 DNA에서 비롯된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변화를 막상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
새해 결심이 연말이 된 지금 제대로 이루어진 사람을 찾기 쉽지 않고,
여럿이 하는 조직의 변화는 더 어렵다.
원래 하던 업무의 방식과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를 규명하는 행동경제학의 거장 칩 히스 / 댄 히스 형제는 그들의 2번째 공동 저서인 스위치에서 변화란 올바른 방향의 설정(기수) + 큰 자극(코끼리) + 시스템(지도)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역설한다.

한 영화관에서는 팝콘의 양과 상관없이 팝콘통의 크기(시스템)에 따라 큰 통일수록 팝콘을 많이 소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잔 다르크라는 한 인물의 순교는 유럽 전체를 변화하게 만들었다(코끼리). 히틀러가 제시한 그릇된 방향은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만들었다.(기수)

변화는 이렇듯 분명히 설계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삶에서 설계한 변화는 왜 쉽게 실행되지는 않는 것일까?
연초의 새해계획이 연말의 결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왜 그런것인가.

엄마친구아들을 보듯, 나도 멋있는 리더들을 보면 매일같이 나를 되짚으며 속상해했다.
'나는 지금까지 뭘했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내가 잘못산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스스로의 부족함을 채워준 것은 시간이 지나보니 나의 예민함과 날카로움이 아니라 매일을 꾸준히 쌓는 일관성이었다.
매년 가을이 되면 단풍은 물들지만, 자세히 보면 전부 다 같이 물드는게 아니라 순차적으로 초록에서 노랗게, 빨갛게 변한다.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 자연의 진리는 변화를 떼쓸게 아니라 준비를 타이밍에 맞게 하라는 진리를 전한다.
뾰족할때는 스스로를 괴롭히던 일상이 하루를 제대로 만들고 그것을 꾸준히 하자, 평화와 안정으로 찾아왔다.

여러사람의 변화는 더 어렵다. 다같이 동시에 변하지 않을수 있다.
건강이 몸 전체에서 다 같이 좋고 나빠지지 않듯이, 변화는 부분에서 전체로 움직이는 섭리를 내포한다.

브라운백 커피에서는 고도 성장기를 대비하기 위해서 코치들을 모셨다.
A 코치는 연초에 나에게 지적했다.
'성장이 가파르다면, 3년뒤 갖춰야 할 브라운백의 조직과 그것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당신은 그것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가?'

B 코치는 전체 조직의 변화를 서두르는 나에게 최근에 이렇게 조언하셨다.
'전체의 변화를 서두른다고 다 되는게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늦을것이다. 단일 팀에서 작은 변화를 먼저 만들고 그것에 따라 전체의 변화를 촉구한다. 변화는 그렇게 다가온다.'

A코치의 조언에 따라 3년뒤의 꿈을 만들 조직을 구성하고 변화를 촉구하니 현실이 하나씩 다가왔다. 전체를 한 번에 다 바꾸는게 아니라 필요한 일을 하나씩, 그때그때 맞게 하기 시작했다.

B코치의 이야기대로 특정 팀부터 일으키는 본질적 변화가 제대로 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진보는 하루아침이 아니라 단계에 따라 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자연은 나뭇잎 하나, 줄기 하나부터 숲 전체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본질적인 변화를 작고 단순하게, 그리고 그것을 더 크고 전반적으로 적용한다.

우리의 삶도 ,조직도 자연의 원칙을 그대로 투영한다.
걷기 전에 뛰려고 하지는 않는지,
혼자의 생각과 고집을 불특정 다수에게 강요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나의 타이밍을 누구나에게 당연하게 요구하지는 않는지 되새겨야 한다.

변화는 밖에서 보면 순간이지만, 안에서는 순차적이다.
단풍은 하루아침에 물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