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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km 달리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 관성

1000km 달리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 관성
Photo by 愚木混株 cdd20 / Unsplash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범띠 여성은 소프라노 조수미라고 한다.
그녀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지난 삶이 '성직자의 삶'과 같은 자기 관리의 시간이라고 했다.

조수미는 지난 35년간,
1)몸이 악기이므로 스스로 지켜야 할 약속이 많음을 자각했다.
2)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늘 운동하며 찬물조차 마시지 않았다.
3)공연 후 파티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렇게 절제할 수 있었던 비결로 그녀는 '거절 잘하는 법'과 '자신에게 맞는 배역을 맡는 것'을 꼽았다. 최선의 선택을 위해 아무리 세계적 오페라의 멋진 배역도 스스로의 스타일에 맞지 않다면 거절했다.

많은 사람들이 연초가 되면 새해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연말이 되면 새해 목표의 달성률은 평균적으로 20% 내외가 된다.
조수미처럼 35년간 이 것을 꾸준히 지킬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
세상은 성취에 열광하지만, 성취는 0에 가까운 가능성에서 싹튼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제임스 다이슨은 집에 딸린 마구간에서 5년간 5127번을 실험한 끝에 당대 청소기 시장을 제패한 사이클론 청소기를 만들었다. 그는 45세까지 은행빚에 시달리며 실험실이 3번 폭발하는 위기를 극복하며 고정관념을 깼다. 다이슨은 그 후에도 비난을 무릅쓰고 고객이 더 많은 아시아의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다고 발표했고, 이후 요즘 국내 소비자도 열광하는 헤어드라이어를 만드는 등 여전히 혁신을 계속하고 있다.

피라미드, 팔만대장경 등 인류가 자랑하는 역사적 가치는 모두 이러한 수많은 절제와 실험, 미래에 대한 의지와 열의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역경을 극복하며 형성되었다. 이렇게 기존에 없던 무엇인가를 성취해가는 지난한 인고의 과정을 과학에서는 처음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인 '관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할때 하던대로 하던 습관이 나의 변화를 가로막는 경우, 매일 만나는 가까운 이들이 내 시도를 어색해하는 경우, 조직에서 기존에 없던 과제를 하려할때 과거의 성공적인 경험과 체계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 등은 모두 관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관성은 정지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정지 관성'과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운동 관성'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이다. 버스가 출발할때 뒤로 몸이 쏠리는 것은 '정지 관성', 버스가 멈출때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은 '운동 관성'에 해당한다. 변화의 시작에는 '정지 관성'이 늘 앞을 가로막는다.

아마 거대한 성취는 시작 단계에서 미약할때부터 사회적 비난, 무관심, 실험 실패 등의 수많은 '정지 관성'을 뚫고 시작되었을 것이다. 라이트 형제는 동력 비행 성공 후에도 10여년간 미국 과학계로부터 찬사보다 질시를 많이 받았다. 다이슨의 사례를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했을때 제일 많이들은 이야기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은게 이상하다' 였다. 흡연자들이 금연할때 주변의 '담배 친구'가 가장 큰 어려움이 되고, 같이 맛집 투어하던 친구들이 다이어트에서는 요주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와 같다.

하지만 일단 투지와 축적이 역치를 넘어서게 되면 이때 부터는 '운동 관성'의 지원을 받는다.
마이클 펠프스는 하루 15km 내외를 수영하며 대회를 앞두고 연습하고 '요일도, 시간도 모른다. 그냥 수영만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올림픽 금메달만 23개를 따며 수영 황제가 되었다.
2001년 애플이 출시한 아이팟은 당시 점점 떨어지던 애플의 컴퓨터 시장 점유율을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실험 중 하나였다. 아이리버를 필두로 한 시장에 후발주자로 출시한 아이팟은 3년 뒤 7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애플의 '운동 관성'을 이끌었다.

삶에서 이런 '운동 관성'을 겪은 경우는 많았다.
늦깎이로 재미붙인 달리기가 좋아서 작년에는 한 주에 25km를 뛰기로 했다.
그런데 연말이 되니 어느덧 1000km가 되어서 이제는 완전히 몸에 붙은 습관이 되었다.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어느날 동료의 피드백으로 시작했던 이모티콘 쓰기가 수년이 지나니 명랑한 커뮤니케이션을 만드는 보석같은 습관이 되었고, 브라운백 내부에서 실험적으로 시작한 성장세미나는 어느덧 300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1:1이 익숙해진 브라운백의 리더들은 이제 비즈니스 코칭의 영역으로 리더십을 확장하며 회사가 성장하면서도 단단한 문화를 유지하는 주역이 되었다. 그리고 고객이 떠나지 않는 구독 사업에 몰입하면서 우리는 '운동 관성'을 극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해마다 성취의 시작 시점은 전 해의 최고 지점이 된다. 꿈의 기준이 관성의 도움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1000km 달리기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아침의 따뜻한 이불, 다소 촉박한 시간, 기상 직후의 어수선함 같은 수많은 사소한 이유가 내 삶의 변화를 가로막는 것을 뿌리치고 달리는 1km에서 출발한다.

익숙한 것과 결별을 선언하면서 새로움이 자리잡을 여유가 생긴다.

'정지 관성'에 No라고 말할때 '운동 관성'이 시작된다.